경쟁이 심화되면서 기업들은 공급선과 판매선의 안정 및 경쟁력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어느 업계보다 보수적인 철강업계에서도 공급선과 판매선 안정의 중요성이 일찍부터 강조돼 왔다.

현대제철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포스코에 도전장을 내 민 것도 현대차 그룹의 안정된 판매망(자체 수요)에 기반한 것이다. 또 포스코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과 도전을 선언한 것도 글로벌 판매망 구축을 자신했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고객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입니다"라는 모토로 시장을 보고 있다. 또 공급사들도 그렇게 포스코를 대우해 주기를 원한다.

철 스크랩 시장은 여전히 전 근대적이다.

- 철 스크랩 시장은 정글이다

전기로 제강사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주 원료인 철 스크랩 공급의 안정성을 중시하고 있다. 공급 안정을 위해선 웃돈을 주고 구매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제강사 대표는 “철 스크랩은 고등어와 같다. 철 스크랩도 오래되면 질이 나빠진다. 적기 공급된다면 웃돈을 줄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철 스크랩은 오래 되면 회수율이 떨어지고 불순물이 늘어난다. 제강사 입장에서는 재고를 낮게 가져 갈 수록 회수율도 줄고, 비용도 준다. 또 적기 공급 체제를 갖추게 되면 철 스크랩 야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철 스크랩 JIT는 제강사의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제강사의 기대에 정반대 시각을 보이는 것이 공급자인 철 스크랩 유통업계다. 철 스크랩 유통업계 관계자들 조차 “철 스크랩이 안정 공급되면 제강사가 제값을 주겠나?”라고 반문한다. 이러한 시각은 대상·중상·소상 할 것 없이 철 스크랩업계 전반에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올해 국제가격이 크게 올랐다. 국내가격도 그에 준해 대폭 올랐다. 대폭 오른 이유가 제강사간 구매 경쟁도 있었지만 전기로의 불을 끄면 안 된다는 구매팀의 사명감도 한 몫을 했다. 그래서 웃돈 퍼레이드가 재연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른 만큼 철 스크랩업체들은 평가 이익을 거뒀다. 제강사의 요청에 응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기회 손실은 본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보면 철 스크랩 유통업계의 말도 과히 틀리지 않는다.

- 파이를 키울 것인가? 뺏을 것인가?

이런 점에서 철 스크랩 시장은 지금 정글이다. 제강사와 철 스크랩업계, 납품상과 하부상간의 철 스크랩 생태계는 적자생존에 기반한 정글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인간은 삶의 파이, 경제의 파이를 빠르게 키워왔다. 그리고 키운 파이를 두고 서로 나누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유독 철 스크랩 시장은 경제적 파이를 키우기보다 서로의 파이를 빼앗는데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 제강사는 국내 철 스크랩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기 위해 여념이 없고, 철 스크랩업계는 제강사의 구매를 곤혹스럽게 만들어 가격을 올리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서로가 악(惡)해서가 아니라 철 스크랩이 갖는 내재적 속성에서 비롯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해법을 찾는 것도 어렵다.

그렇다고 공급자와 구매자간의 생태계를 정글로 만들어서야 양 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급자와 구매자간의 긴밀한 협조 없이 거친 경쟁의 시대를 헤쳐가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지금 공허하게 상생을 말하거나, 무리하게 앞서나가는 것이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떠난 이상은 공상일 뿐이다.

우리는 그 시작이 양 업계가 마음을 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해야 상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철 스크랩 대란은 더욱 아쉽다. 제강사도 철 스크랩업계도 모두 마음의 문을 닫고 옷깃을 여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로는 서로가 곤경에 빠뜨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란이 양업계에 준 상처는 더욱 크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스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