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 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었다. 올 여름 무더위 탓에 녹조현상은 더욱 심각했고, 생명체가 아예 살 수 없는 썩은 물이 되었다. 인구 1,000만명의 식수원인 낙동강에 둥둥 떠 있는 죽은 물고기 뱃속에는 기생충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강물을 ‘녹조라떼’라고 부른다.

식수원이 ‘녹조라떼’라면, 수돗물은 ‘아메리카녹’이다. 수도꼭지를 틀면 마치 커피 같은 물이 나온다. 노후 된 수도관에서 나오는 녹물이다. 우선 보기에 안 좋다. 수도관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들도 섞여있다. 물을 1~2분쯤 흘려 보내고 나서야 색깔이 어느 정도 투명하게 바뀐다. 냄새도 심하다. 마시기는커녕, 양칫물로 쓰기에도, 채소를 씻기에도 찜찜하다.

이처럼 경기도 내 상당수 노후 아파트가 녹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기 신도시 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들이 노후화되면서 수도관이 낡고 부식돼 시뻘건 녹물이 쏟아지고 있다. 20~30년된 노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매일 같이 되풀이되는 녹물과의 전쟁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녹조라떼´와 ´아메리카녹´
▲ ´녹조라떼´와 ´아메리카녹´


1994년 이전까지 아파트의 수도관은 아연도강관, 이른바 ‘백관’으로 설치됐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연도금제품의 특성 상, 일정 시간이 흐른 뒤 급격한 부식이 일어나 수년 전부터 녹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로 인해 정수장에서 깨끗한 수돗물을 보내도 부식된 수도관을 거치면서 녹물로 변하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내 공동주택 중 약 110만 가구가 이러한 녹물 섞인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유일한 대안은 수도관을 교체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체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파트 관리소장도, 부녀회장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자체의 도움 없이는 각 가정에서 이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2013년 개정된 주택법에 따라 20년 이상 지난 공동주택의 상하수도 배관 교체 또는 보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노후 배관 교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19년까지 1천755억원을 들여 33만여 가구의 노후 수도관을 STS강관으로 전면 교체한다. 전체 공사비의 80%가 지원되는데 소규모 주택에서 아파트까지 모든 주택이 해당된다.

경기도도 오는 2030년까지 20년 이상 노후주택 30만 가구의 녹슨 상수도관 교체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상수도관 개량 공사비의 최대 80%까지 지원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백관으로 된 수도관을 쓰는 공동주택만 110만 가구다. 2030년까지 30만 가구만 상수도관 교체 지원을 한다면 나머지는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녹조라떼’를 식수원으로 쓸 수 없고, ‘아메리카녹’을 생활용수로 쓸 수 없다. 정부는 이 사업을 확대하고 사업기간을 당겨 빠른 시일 내에 노후 상수도관 교체를 해야 한다. 어쩌면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강관산업의 사양 속도가 조금은 늦춰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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