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 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인발강관은 념려말라!”

념려말라?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다소 어색한 표현이다. 하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염려하지 말아라’의 북한식 표현이다.

인발강관, 무계목강관과 관련된 정보를 얻고자 검색을 하던 중 ‘인발강관은 념려말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게 됐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당 영상은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인발강관직장을 소개하고 있다.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는 평양 인근 남포시에 위치한 제철소이며, 인발강관’직장’은 인발강관’공장’을 의미하는 듯 하다. 북한의 강관 생산현장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는 영상이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인발강관’은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올리는 그 인발강관(drawing pipe)를 뜻하는 게 아닌 듯하다. 국내 배관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용접(welded)강관을 ‘조관파이프’라고 부르고, 무계목(seamless)강관을 ‘인발파이프’라고 부른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북한의 인발강관은 무계목강관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영상은 연출된 것이겠지만 어쨌든 천리마제강소는 무계목강관을 열심히 생산하고 있다. 영상을 보다보면 “115%의 효율로 생산하고 있다”, “꼬리잡기 압연, 맞받아치기 압연으로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의 막바지에 있는 인터뷰에서 한 노동자(근로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디선가 외국에서 사오자는 소리도 들려오던데 우리(천리마제강소)가 강관을 땅땅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강관산업의 경쟁력은 세계 일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절반 짜리 일류에 불과하다. 용접강관만 일류이지, 한국의 무계목강관 산업은 결코 일류가 아니다.

용접강관의 경우 국내 연간 생산능력은 무려 1천만톤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무계목강관의 생산능력은 보통강으로 49만톤, 특수강으로 2.5만톤에 불과하다. (한국철강협회 2016년 기준) 한국의 무계목강관 산업은 심각할 정도로 취약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북한도 자급을 위해 무계목강관 생산에 힘쓰고 있다. 물론 남한도 세창스틸과 일진제강, 세아창원특수강 등이 열심히 생산하고 있지만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2,3년 사이에 테크스틸앤케미컬, 나진포르튜나 등 해외에 기반을 둔 기업들이 국내에 무계목강관 생산설비를 들여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모두 깜깜 무소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창스틸의 기계구조용 무계목강관 사업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일진제강은 최근 추가 투자 소식을 밝혔고, 세아창원특수강은 1천억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국내 무계목강관 산업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많이 부족하다.

짧은 시간 내에 한국의 무계목강관 산업이 일류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 수 있다. 다만 테나리스, 발로렉, JFE 등 해외 유명 강관 메이커들은 모두 무계목강관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우선 국내에서 세계 일류 메이커가 탄생하는 것은 바래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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