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김홍식 부사장
▲ 스틸앤스틸 김홍식 부사장
설 연휴와 평창올림픽으로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던 지난 2월16일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대미 철강재 수출이 많은 12개국에 대해 무역규제 권고안을 발표했다. 미 상무부가 제안한 방안은 3가지로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한국, 러시아, 브라질, 중국, 코스타리카, 이집트, 인도, 남아공,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터키 등 12개 국가에 대해 53%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 △국가별 대(對)미 수출액을 지난해의 63%로 제한하는 방안 등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11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물론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이고, 우리 정부 역시 정치 외교적인 확대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WTO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우선 미국의 무역규제 권고안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하자면 한국을 길들이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규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수입재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232조는 한국을 중국 가두기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산 철강재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100% 수입에 의존하는(대부분 중국산) 필리핀이나 우리와 수입비율이 비슷한 대만의 경우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 됐다.
수입이 많이 돼서 자국 철강산업에 위협이 되는 것이 명분이라면 최대 수입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등 북미와 중남미 국가는 제외 됐으니 이 논리 역시 앞뒤가 맞지 않다.

더욱이 한국은 이미 열연과 냉연 등 많은 철강제품에 대해 AD를 맞은 상태다. 12개국 중에서 상대국 관세만큼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호혜관세(Reciprocal Tax)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 앞에 우방 논리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한국은 꺼내들 카드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두테르테처럼 막무가내식도 아니고, 중국처럼 항공기 수입을 취소할 수 있는 히든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처럼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미국 산 무기수입을 취소할 수 없고,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 역시 트럼프 입장에서는 좌파논리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책 회의를 장관이 직접 사안을 챙기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실질적이었으면 좋겠다.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규모를 떠나서 대미수출을 많이 하는 업체 사장단 회의를 먼저 한 후 하거나, 연휴가 끝난 이후 이들 업체까지 소집해서 회의를 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때 협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세세한 어려움까지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협회가 고충이 무엇인지를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협회의 대답은 늘 ‘업체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이 어렵다’는 식이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협회가 필요하다. 그것이 협회의 일이다. 대기업의 목소리만 듣는다면 왜 회비를 내야하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원론적인 얘기지만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통상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오바마 정부 2기 때부터 미국우선주의(American First)는 시작되었고, 트럼프 정부는 대선기간부터 보호무역을 캐치프레이스로 내걸었다. 충분히 통상마찰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통상은 사전 예방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인맥이 있어야 한다. 냉정히 말해서 이번 조치도 미국 철강업계의 로비 때문이다. 미국인 전체가 수입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이고 곧바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정부 입장은 WTO에 제소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원론적인 얘기다. 최종판결까지 2~3년이란 시간이 걸리고, 그 기간 높은 관세를 물면서 이겨낼 업체는 없다. 설사 승소를 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만든 법규조차 무시하거나 탈퇴를 하는 미국이 이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번 사건의 해결방안은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본다. 월버 로스 상무부 장관이 트럼프에 보고를 마쳤다는 것은,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건, 억만장자 내각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서건 우리의 산업부가 대응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인가? 협상은 Give and Take다. 카드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 많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미국의 속내는 외교적 측면에서 북한 및 중국가두기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라는 것이고, 군사적으로는 방위비 분담이며, 경제적으로는 FTA 재협상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것은 흔히 하는 말로 방송용이라고 본다. 그럼 트럼프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방위비분담과 미국산 무기 구매라고 본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미국 의존적인 무기 구매를 다변화하는 카드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외교술로 요나라(거란)의 80만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거란군을 물리치고, 강동6주까지 돌려받은 서희 할아버지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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