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2일~13일 서울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스틸포럼(ASF)에서 의미 있는 주제발표 두 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중국 마이스틸 샤샤오쿤 부총재의 2019년 철강경기 전망과 관련한 내용이다. 내년 중국 철강생산은 금년과 비슷한 수준이 되겠지만 내수는 2% 정도 줄어들고, 수출은 다소 늘어날 것이며, 가격은 올해보다 6% 정도 하락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치킨게임을 연상케 하는 양국의 보복관세는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고, 근본적 배경은 패권경쟁이다. 따라서 향후 중국 경제는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 물론 중국 정부 역시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겠지만, 철강이 소재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기둔화는 소비감소, 나아가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필자는 내년에는 중국의 저가수출이 재개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또 하나는 인도 스틸민트 드류브 고엘 사장의 중기 전망인데, 최근 잇따른 설비증설로 2020년부터는 인도 역시 초과공급 국가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아직 인도의 쇳물 생산은 1억톤을 갓 넘긴 상태다. 그러나 지난 과거 역사를 돌아보면 철강생산은 장치산업의 특성상 어느 나라건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2020년이 과잉문제가 표면화되는 시점은 아니겠지만 설비증설의 불을 붙이는 계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두 가지 발표를 보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한국 철강산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이다.

향후 중국은 해외시장에서 저급재제품은 베트남이나 인도와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다. 중국보다 낮은 인건비와 저급재 수요가 풍부한 시장, 수요가의 요구 때문이다. 중국이 그랬듯이 이들 나라 역시 저급원료로 저가재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이 결과 중국은 중간 Grade 제품으로 생산 영역을 넓힐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과거 사례에서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유럽의 철강산업은 미국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겪었고, 전 세계 생산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던 미국은 일본으로 인해 부진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일본은 중국 때문에 한참을 밀렸고, 여러 번의 구조조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구조조정은 경기가 어려워질 때 수면위로 떠오른다. 바꿔 말하자면 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기는 경기가 좋을 때라는 얘기인데, 돌이켜보면 우리는 몇 번의 좋은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싶다. 짧게는 지난 2년이고, 길게는 2000년대 초반~금융위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기가 좋은데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나 정부는 없다. 3년 전에도 협회까지 나서 외부 컨설팅까지 했지만 유야무야됐다. 그래서 어려운 구조조정 얘기보다는 보다 쉬운 수출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경제구조나 산업구조에 대한 구조조정을 얘기할 때 특정 국가를 모델로 삼곤 한다. 가령 독일 스타일이니, 일본 스타일이 하는 식이다. 일본은 확실히 배울게 많은 국가다. 그러나 그대로 따라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일본이 지금까지 버티는 이유는 생산에서 수요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공급체인과 지배구조 때문이다. 가령 수출도 일본 제조업체 산하 종합상사를 통해서하고 이들 종합상사는 지배구조와 인력 파견으로 엮여 있다. 또 국내가됐건 해외가 됐건 수요가들은 일본산을 우선 선호하는 일본인들의 국민성도 한 몫을 한다. 한마디로 일본의 산업구조는 ‘주식회사 일본’이다.

유럽은 통합(EU)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아직까지 완성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해법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힘의 논리다.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해결방안은 보호무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반면 중국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를 한다. 외풍에 대한 바람막이를 하고, 직접 M&A를 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재무비율 지침까지 내린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여전히 단기 수익성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단기 수익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몇 년 후 얼마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시장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고, 이러한 정책(방향성)에 대한 일관성이 아닐까 싶다. 일본과 같은 강력한 서플라이체인을 구축하고, 개별업체마다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제품군을 개발하는 것은 이러한 장기적인 전략의 틀 위에서 나와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식 모델이 필요한 시점인데, 그 중심에는 협회가 있어야 하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다. 지금이라도 구조조정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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