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김홍식 부사장
▲ 스틸앤스틸 김홍식 부사장
동부제철 매각 추진이 재 점화되면서 한국 철강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얘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소문에 따르면 포스코는 구매의사가 없음을, 동국제강은 위탁경영 의지를 표명한 반면, 현대제철은 노코멘트였다는 말이 들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궁금증과 추측을 불러온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가 동부를 인수한 후 이를 빌미로 상공정 투자를 더 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필자는 이러한 소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철강산업 구조조정 수준과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소문에 따라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정책이 바뀌고... 일본이나 중국처럼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은 없는 걸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만큼은 단순히 동부매각의 시각으로만 치부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어쩌면 구조조정 논의에 대한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수출주도형, 제조업 중심의 성장을 해왔다. 또 제조업이 어려우면 건설을 부양하여 경기를 지탱해 왔다.

IMF 때에는 수출이 경제를 살렸고, 금융위기 때에도 자동차와 건설이 살렸다. 그 덕분에 한국 철강산업은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고,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수년 넘게 인당 1,000kg가 넘는 소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바보다. 그래서 구조조정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고, 갑론을박이 있더라도 그것은 과정이고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우선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협회와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 업체가 세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큰 그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지금도 많은 업체가 법정관리나 화의 등 말 그대로 파산 상태다. 대부분 산업은행이 최대 채권자다. 어차피 산업은행은 자금회수가 급선무다. 파산업체의 처리를 산업은행에만 맡기는 것은 정부가 자금 회수에만 신경을 쓰라는 얘기와 같다.

그러면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서, 동부는 누구에게 가는 것이 유리한가? IMF부터 지금까지 12번의 인수합병이 있었다. 지금까지 최대 수혜자는 현대차 그룹이다. 총 12건 중 6건이 현대차그룹 품으로 갔다. 경제가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는 특정업체로 편중되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규모의 경제라는 이점을 살릴 수 있었고, 나름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의 장점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미 한국시장은 과잉문제가 표면화됐고, 더 이상 규모의 경제를 통한 지배력 중심의 성장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유럽의 철강사들이 규모의 경제보다 왜 차별화, 전문화를 선택하지는 우리보다 앞선 경험에서 얻은 결과다. 더욱이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판매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현대차는 철강에 대한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기존 라인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내수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여기에 4차 산업과 인구 감소로 인한 수요 감소를 감안할 때 억지로 국내기업에게 인수를 강요한다면 해당 기업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규모의 경제를 주장하는 측도 있지만 이것도 경제가 성장할 때 가능하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화로 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미 포스코나 현대는 전문화로 가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다. 또 단압으로는 전문기업이 되기도 어렵다.

일부는 국내 업체보다는 차라리 해외 업체에 팔리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외업체 M&A를 하면서 외국기업은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중국 철강사들의 시장 적응력이나 원가절감 노력 등을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수 주체가 누구냐는 매우 중요하다.

철강이 갖는 특성과 중요성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외국기업에게 동부가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영국이나, 인니 등 외국기업에 철강을 넘긴 나라치고 제조업이 흥한 나라는 없다. 더욱이 소문대로 중국 업체가 인수를 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물량은 150만톤에 불과하지만 저가 소재를 무기로 가격경쟁력을 앞세운다면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칫 물고를 터주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제조업 중심의 나라고, 수출주도형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부실업체를 처리하는 쪽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철강산업 전체, 나아가 향후 미래까지 생각하는 시각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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