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경영연구원 유승록 자문위원
▲ 포스코경영연구원 유승록 자문위원
국내 가전제품의 판매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 나타난 이상 고온 현상과 새로운 가전제품에 대한 소비 증가가 판매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험공사가 2018년 10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가전제품 판매액은 과거 10년간 연평균 7%의 고성장을 지속하였고 특히 2014년 이후 성장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가전제품 소매 판매액은 2014년 17조원에서 2018년에는 25조 4천억원으로 4년 만에 8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여름 고온 현상이 판매 증가의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냉장고 판매량은 2014년 295만대에서 2018년에는 310만대로 15만대 증가하였고, 에어컨은 같은 기간 동안 180만대에서 250만대로 70만대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전제품의 국내 판매와는 달리 수출은 2014년 이후 큰 폭의 감소를 계속하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2014년 한국의 가전제품 수출은 154억 달러에 달하였으나 2018년에는 7억2천만 달러로 4년 만에 절반 이하로 감소하였다. 같은 기간 동안 가전제품에 대한 선진국의 무역보호조차가 이어지면서 수출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었고, 삼성 LG 등 국내 대형업체들이 해외생산을 보다 확대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보여 진다.

관련하여 세탁기의 해외생산 비율은 2013년 67.8%에 불과하였으나 2017년에는 86.9%로, 냉장고는 해외생산비율이 2017년 80.3%에 이르고 있다. TV는 이미 일부 첨단기술 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에서 가전시장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국내 가전제품 대표선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기존 전통 가전제품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이 판매를 주도하고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8년 국내 TV 판매의 72% 가량이 65인치 이상의 대형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냉장고도 판매의 81%가 대형 냉장고이고, 대형 세탁기 판매비율도 68%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국내 가전 시장은 이러한 고가의 대형 프리미엄 제품이 주류를 이룰 것이 확실하다.


전통 가전제품이 빠른 속도로 프리미엄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소위 ‘생활가전제품’이 새로운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최근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로 인하여 2016년 100만 대에 불과하였던 공기청정기 판매는 2018년 250만대 2019년에는 400만 대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사용 편의성이 크게 개선된 무선청소기 시장도 크게 확대되고 있고, 아파트에서 빨래를 건조하는 장소로 사용되던 베란다가 사라지고 동시에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의류관리기 시장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가전제품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철강수요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이러한 가전수요의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형회사들은 Signature, Chef Collection 등 이미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브랜드화를 완성하고 적극적으로 고가화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프리미엄 에어컨 1대의 가격이 1천만원 이상이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앞으로는 가전제품에 AI, IoT 등의 첨단기술을 적용함과 아울러 가구와 가전을 결합하는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위해 대형 가전업체들은 ‘Built-In’ 가전제품을 새로운 전략 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견 가전 생산업체들은 환경이나 건강 관련 제품, 미니공기청정기 등 소형 생활가전제품, 이동식 에어컨 등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면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가전제품의 대형화 및 프리미엄화, 그리고 생활가전제품의 시장 확대가 철강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최근 일부 철강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언론에서는 가전업계들이 제품고급화와 원가절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적용 소재를 다양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부 가전제품에서는 철강 ‘out’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면, TV 제품이 PDP/LCD에서 LED로 그리고 다시 QLED/OLED 제품으로 진화하면서 백판에 사용되는 철강재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방열판이나 베젤에 적용되는 강재는 아예 사라지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전생산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철강원단위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철강업계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가전제품이 고급화되면서 사용되는 철강재도 STS 등 고급강의 채용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전산업의 변화를 반영하여 가전용 철강제품에 대한 수요도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철강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철강제품의 출하에서 차지하는 가전산업의 비중은 10년 전에는 7~8%에 이르렀으나 2018년에는 5%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이후 국내 철강명목소비가 큰 변동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전산업에서의 수요비중 하락은 관련 철강제품의 수요 감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한국철강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컬러강판 설비의 가동률은 최근 2년간 지속 하락하여 2018년에는 75%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컬러강판 업계의 수익성도 최근 크게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동률의 하락은 컬러강판의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감소한 것에 더하여 최근 이루어진 설비증설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익성 악화는 컬러강판에 대한 수요가 정체 혹은 축소되고 있는 시기에 기업간 치열한 판매경쟁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국내 가전산업의 구조 변화와 가전용 강판에 대한 수요 감소 그리고 경영성과의 악화에 대응하여 최근 컬러강판 업계도 신제품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내 1위의 컬러강판 제조업체인 동국제강은 TV 후면부분과 냉장고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양면 마이크로 엠보싱 기술을 적용한 Bending Wave 컬러강판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하였고, 포스코강판은 일반 컬러강판보다 경도와 가공성 그리고 스크래치 내성이 우수한 고경도 STS 컬러강판을 개발하여 가전, 엘리베이터, 방화문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치밀한 전략의 수립과 추진이 필요하다.

우선 최근 부상하고 있는 생활가전에 대한 수요개발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생활가전 제품은 아직 시장도입단계이기 때문에 컬러강판 업계 입장에서 다시 맞이할 수 없는 신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제품 및 수요 개발과 동시에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품질이 좋다고 하더라도 원가경쟁력이 없으면 그 제품은 살아남을 수 없다. 가전산업에서의 경쟁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가전업체 또한 원가절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생산제품의 특화를 통해서 기업 고유의 제품군을 확보하고, 동남아 등 지리적 외연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할 시점이다. 머지않아 동남아 가전시장에서도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와 생산이 증가할 것이다. 이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컬러강판은 철강제품 중에서 최종 고객과 가장 가까이 있는 제품이다. 최종 고객의 요구와 그 변화를 지속적으로 탐지하고 신속히 받아들여서 선제적으로 제품 개발과 생산에 반영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고객 맞춤형’ 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강제품 중에서 컬러강판이 AI, Big Data, 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도입,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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