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서정헌 사장
▲ 스틸앤스틸 서정헌 사장
지금까지 국내 철강사 구조조정은 대부분 부도난 철강사를 국내 철강사가 인수하여 상호 시너지를 내면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부도난 철강사를 철강 선도기업이 인수함으로써 신규투자를 하지 않고도 국내시장에 대한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더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높은 시장지배력이 바로 높은 경영성과로 직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보철강 구조조정은 현대차그룹이 한보철강을 인수하고 고로로 진출하면서 현대제철의 시장지배력이 강화되는 확대지향적 구조조정으로 추진되었다. 당시는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어느 정도 양적성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제철의 부상으로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두 선도기업 중심의 복점적 경쟁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동부제철 입장에서는 차라리 포스코 독점일 때는 포스코와 어느 정도 수직적 보완관계를 유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었다. 복점적 경쟁구도로 바뀌면서 경쟁이 더 심화되어 동부제철과 같은 단압밀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사양화 단계로 진입하면서 시장지배력이 약한 단압밀의 퇴출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단압밀이 퇴출하면서 복점적 경쟁구도는 더 심화되는 것이다.

일관공정을 가진 포스코의 높은 시장지배력과 수익성을 지켜보면서 단압밀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도 일관공정으로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단압밀들은 약한 시장지배력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동부제철이나 동국제강 모두 상공정 투자를 통해 일관공정을 완성하고 시장지배력 강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철강사 중에서 상공정 진출에 확실히 성공한 철강사는 현대제철 하나뿐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벌기업인 현대차그룹만이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현대차그룹 정도의 힘이 아니고는 우리나라 철강시장에서 수직계열화를 실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동부제철의 경우도 시장지배력을 추구하다가 실패하고, 두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퇴출하게 된 것이다. 두 선도기업의 힘이 강화되면 될수록 동부제철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동부제철과 같이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진 철강사도 선도기업의 힘에 밀려 결국 시장에서 퇴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 철강시장에 시장지배력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철강사 구조조정도 개별 철강사의 경쟁력이 아니라 시장지배력 기준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단압밀들이 일관공정을 완성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동부제철이 시장에서 퇴출하게 된 원인은 스스로 경영전략에서 실패한 측면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우리나라 철강시장의 경쟁구도 변화라고 생각한다. 만약 동부제철이 일관공정을 완성하였거나 일찍부터 시장지배력을 포기하고 단압으로서 생존하려고 하였다면 지금보다는 더 오래 생존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철강산업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경쟁력 있는 철강사 중심의 구조조정이 아니라 시장지배력이 강한 선도기업 중심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구조조정 결과 시장지배력이 강한 철강사가 살아남지만 시장지배력이 강한 철강사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지배력이 있는 철강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산업경쟁력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시장지배력이 산업경쟁력이 될 수 있었지만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면 시장지배력과 산업경쟁력이 괴리가 생긴다. 따라서 지나친 시장지배력 중심의 구조조정이 우리나라 철강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선도기업은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하게 된다. 아직도 시장지배력 중심 경영전략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철강 선도기업들은 시장지배력 중심 전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구조조정 과정에 선도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남용되지 않도록 정부가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본격적으로 사양화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철강산업이 사양화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선도기업마저도 시장지배력 중심 전략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국내 고로사들이 이번에 동부제철 인수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내 철강 선도기업 입장에서는 동부제철을 인수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시장지배력과 수익성이 좋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면서 국내 고로사가 동부제철을 인수해야 한다는 명분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포스코나 현대제철 입장에서는 동부제철을 인수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그로 인한 양적 비대함과 시장적응력 둔화, 위험비용 증가 등 불이익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동부제철 매각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높은 시장지배력이 높은 수익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철강사를 지나치게 비대하게 하여 시장적응력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동부제철 매각에는 국내 철강사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서 결국 KG그룹이 인수하게 된 것이다. KG그룹의 동부제철 인수 역시 한국 철강산업의 구조적 변환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KG그룹은 철강과는 무관하게 M&A로 성장한 기업으로 더 객관적으로 철강산업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적응 속도가 빠르고 기존에 다른 철강사가 예상하지 못한 경영전략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보철강 부도는 IMF사태라는 외부에서 온 충격에서 연유된 것이지만, 이번 동부제철 부도는 우리나라 철강산업 사양화와 경쟁구도의 변화라는 아주 구조적인 문제에서 연유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한보철강은 인수하고 고로를 투자하는 확대지향적 구조조정을 했다면 KG그룹은 동부제철에 대해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을 할 전망이다. 만약 동부제철도 국내 고로사가 인수했다면 철강부문 시너지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려는 확대지향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잉인 국내 철강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동부제철이 중국 철강사로 재매각 된다면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구도가 포스코 현대제철의 복점적 경쟁구도에서 포스코, 현대제철, 중국 고로사의 과점적 경쟁구도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국내 선도기업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시장의 변화는 선도기업 중심의 시장지배력 시대는 가고 시장적응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더 이상 한국 철강시장에 규모와 시장지배력의 힘이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보철강과 같은 확대지향적 구조조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히려 시장적응력을 바탕으로 하는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이 더 바람직하다. 따라서 KG그룹이 동부제철을 인수한 후 추진하는 시장적응력 중심 경영전략과 축소지향적 구조조정이 사양화 국면으로 들어서는 한국 철강산업에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KG 동부제철”의 등장으로 인한 철강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우리나라 철강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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