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일상 뿐 만 아니라 기업들의 사업 계획과 전략도 바꿔놓았다. 수주절벽에 내몰린 국내외 많은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했다. 최적 생산 체제 전환과 감산, 구조조정, 유동성 확보 등 당장의 매출과 수익이 줄어든다고 해도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스테인리스 업계는 이런 시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메이커들은 감산 대신 내수 판매 확대를 선택했다. 코로나19 영향이 2분기를 기점으로 가시화되면서 밀들은 수출 물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밀들의 수출비중은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평균 20~30% 수준 이상이다. 각 국의 락다운과 보호무역조치 강화 등으로 갈 곳을 잃은 수출 물량은 내수 시장을 겨냥하게 됐다.

명분은 수입시장 방어를 통한 내수시장 수성이었다. 그리고 3~4월은 올해 수입 절정기였다. 결과는 유통시장 내 밀어내기와 냉연업계의 시장점유 감소, 수익성 저하 등으로 이어졌다. 국내 연관 수요산업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가진 못했다. 실제 진성수요가 늘어나긴 역부족이었다. 최근 유통시장은 시트 판매보다 코일 중심의 판매가 성행 중이다. 코일 판매 증가는 재유통 시장에서의 순환을 의미한다. 이마저도 더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메이커 코일센터들은 수입재 방어를 명분으로 받은 저가 소재를 수입업계에 풀어냈다. 한동안 오퍼가격의 인상과 고환율로 수입재 매입이 원활하지 못했던 수입업체들은 내수 저가 매입으로 돌아섰다. 일시적으로 수입이 방어되고 판매량이 늘어난 것 같은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

모두가 저가의 메이커 소재를 창고에 두고 일부 실수요가 발생하면 모두 달려가 판매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런 시국에 신수요 개발, 신시장 개척은 부실 우려와 자금난 등의 이유로 다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정된 시장에서 누가 더 빨리 싼 가격을 던지냐가 관건인 시대로 진입했다. 수익성은 점점 담보하기 어려워지고, 매출은 올해 들어 달이 가면 갈수록 기울기 시작했다. 포스코의 가격 조정 여부와 상관없이 시장의 가격은 갈수록 휘청이는 중이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별개로 현재 스테인리스 시장의 수요는 감소했다. 경기부양 희망을 걸고 낙수효과를 기대하기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업체는 매출이 줄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업체의 파이를 가격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일종의 풍선 효과인 셈이다.

펜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에서 엔데믹(Endemic·주기적 발병)으로 전환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지금, 업계는 올해 매우 특수하면서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업계의 상생과 공존을 위해서는 20% 내외 수준의 감산과 판매 축소 전략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판매량을 다 채우고 달성했을지 몰라도 경기회복과 진성 수요 증가의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그 물량은 결국 부메랑으로, 폭탄돌리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업체와 시장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임은 분명해 보인다.

코로나19라는 예상에 없던 변수로 더욱 힘들어진 시기에, 업계 전반이 매출 감소를 감내하고 수익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하며 기본 체력을 강화하고 체질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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