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어느 날 필자는 광주의 철 스크랩 업체들을 방문 중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많은 분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욕심에도 불구하고 이날 대화는 철 스크랩 수출과 관련된 얘기로 모였다. 어느 철강관련 매체에서 3만 톤의 한국산 철 스크랩이 수출된다는 보도를 한 뒤였기 때문이다.

모두 오보일 것이라고 일축하면서도 ‘혹시’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눈 빛에 스쳤고 기대감이 대화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수출 선적 시점이라고 알려졌던 5월 말~6월 초가 지났지만 아직 국내 어느 항구에서도 조짐은 없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것이다.

오보라고 단정하면서 기대의 눈빛이 스쳤던 것은 다가오는 공급과잉 시장에 대해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해법으로서의 수출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이번 철 스크랩 수출 오보 해프닝은 몇 가지 점에서 철 스크랩 업계에 생각할 숙제를 남겼다.

하나는 포스코인터네셔널이 수출 대상업체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포스코인터네셔널은 수출과 관련된 환경을 조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가 실제로 둔갑해 해프닝을 만들었다는 것이 포스코인터네셔널측이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포스코인터네셔널이 압축을 중심으로 수출 의사를 갖고 타진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떻게 해석하던 간에 터무니 없는 오보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과를 떠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왜 포스코인터네셔널인가(?)하는 점이다. 포스코인터네셔널은 포스코의 철 스크랩 구매를 외주 대행하는 업체로 사실상 소비자인 포스코 그 자체이다.

한국의 철 스크랩이 본격적으로 수출이 된다면 창구가 사실상 지금의 구매자가 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 철 스크랩 수출도 제강사가 주도할 수 있다.

철 스크랩이 수출이 되기 위해선 판로 확보를 떠나 3~4만 톤을 모아야 하고, 미리 결제 할 수 있는 자금력과 쌓아 둘 수 있는 항구를 보유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포스코 등 주요 제강사는 유리한 입지를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제강사들은 직접 수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당한 검토를 진행한 바 있다. 한국산 철 스크랩 수출의 주도세력이 다른 나라처럼 스크랩업계가 아니라 제강사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국내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수출 시장에서도 철 스크랩 업계는 제강사 수출의 보조 역할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철 스크랩 업계는 하나의 산업으로 서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수출을 꼽고 있다. 수출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 준비가 되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번 3만 톤의 수출 해프닝이 시사하는 것은 철 스크랩 업계가 수출 주도 세력이 되기 위해선 제강사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일깨웠다. 수출 경쟁을 위해선 1) 자본 축적과 수출 기업의 양성 2) 부두 등 수출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제강사는 한참 앞서 있다.

무역 업체 관계자들은 수출의 전제 조건으로 1) 품질의 안정 2) 거래에 대한 신뢰 확보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거 GMR머티리얼즈의 김동은 대표는 “품질이 들쭉날쭉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다”리고 말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네셔널메탈의 신흥식 대표는 “스크랩 수출은 계약에 대한 이행과 신뢰가 전제”라고 말했다.

구매자들은 싸고, 좋은 품질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양만큼 사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매자에게 종속되어선 미국의 심스메탈과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 나오기 어렵다.

한국의 철 스크랩 시장은 전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이지만 질적인 면에선 여전히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제강사 주도 시장이 이어진 결과이다. 철 스크랩 산업과 철 스크랩 기업들이 독자적인 성장 경로를 밟아 가느냐 여부는 오로지 업계 내부의 준비와 의지에 달렸다.

철 스크랩 수출과 산업화는 공급과잉의 결과물이 아니다. 철 스크랩업계가 수출을 통해 성장하기 위해선 한국의 제강사와 일본의 철 스크랩 수출 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번 오보 해프닝은 한국산 철 스크랩 수출 시장에서 주역이 될 것이라고 기대됐던 한국의 철 스크랩 업계가 가장 늦었다는 점을 인식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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