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 스틸데일리 정예찬 기자
어릴 적, 영화만 보고 사는 게 꿈이었다. 영화관 상영기사나 비디오가게 주인이 장래희망인 적도 있었다. 사실 아직도 철강보다는 영화가 더 좋은 건 사실이다. 지금은 <스틸데일리>라는 매체에서 철강(구체적으로는 강관) 기자로 일하고 있지만 한 때는 영화 잡지 <씨네21>의 기자였었다. 요즘은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철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한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 내가 알던 철강은 <아이언맨>이 전부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와 철강의 접점은 <아이언맨>밖에 없었다. 그런데 철강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니 아이언맨은 작명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냥 아이언(iron)이 아닌, ‘특수강맨’이었던 것이다.

철강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영화와 철강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 끝끝내 찾아낸 영화로는 <파업전야>(1990)가 있었다. ‘동성금속’이라는 단조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철강영화라기 보다는 파업을 결의하는 내용의 이른바 ‘노동영화’였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철의 꿈>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대 산업발전의 모습, 특히 철강 산업의 모습을 담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내가 원하던 ‘철강영화’가 분명했다. 전직 영화기자인 현직 철강 기자로써 이를 놓칠 수 없었다. 이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 서울에 몇 군데 없었던 개봉관으로 찾아가 영화를 봤다.

<철의 꿈>은 다큐멘터리다. 철의 관점에서 한국의 산업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철강 자체의 생산보다는 울산 지역에서의 거대 유조선 건조현장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야드에 철광석을 산으로 쌓아 올리는 모습부터 고로와 전로에서 쇳물을 생산하고 코일을 생산하는 모습들까지 상세하게 묘사한 영화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제철사 내부의 비밀스러운 제선 공정을 담은 장면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 철강업계 관계자들에게는 더더욱 경이로운 광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는 생산 공정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울산 앞바다에서 고래 잡던 선조들의 이야기와 무속 신앙의 이미지, 끓는 쇳물을 보여주며 지옥불을 연상시키게 하는 등 다소 난해한 이미지들이 혼란스럽게 병치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거대한 이미지가 안겨주는 압도적인 느낌만큼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압도적인 느낌을 넘어 숭고하다고나할까.

영화평론가 장병원은 “웅대한 규모와 정연한 생산 공정의 결과인 유조선은 인간의 손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창조물을 목격하는 숭고함을 전해주는 반면, 인간을 짓누르는 괴물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이를 두고 “아름다운 철의 춤과 노동의 통증이 전해지는 철의 압박”이라고 표현했다.

<씨네21>은 <철의 꿈>을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6위로 선정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3위로 선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 <스틸데일리> 독자들에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철강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철강 기자에게도 무척이나 지루한 영화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철소의 내부가 궁금하다면, 인간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전로를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는 듯한 체험을 해보고 싶다면 한번 챙겨보시기를 추천한다.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은 스케일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영화 <철의 꿈> 스틸컷
▲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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